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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좋은글

[시]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 김남주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 김남주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감옥 속의 겨울 속의 나를

머리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가슴 가득히

뜨건 피 돌게 한다

그대만이

지금은 다만 그대 사랑만이



그대는 내게 왔다 기적처림

마지막 판가름 한판 승부에서

보기 흉한 패배로 내가 누워 있을 때

해적선의 바다에서

난파선의 알몸으로 내가 모든 것을 빼앗기고

떠돌 때

그대는 왔다

파도 속의 독백처림

비밀을

비밀 속의 비밀을 속삭이면서



그때 내가 최초로 잡은 것은

보이지 않는 그대 손이었다

그때 내가 최초로 만진 것은

대낮처림 뛰는 그대 젖가슴이었다

그때 내가 최초로 맛본 것은

꿈결처럼 감미로운 그대 입술이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술잔으로 그대 이름을 떠올렸다



광숙이 !

그대가 아녔다면

책갈피 속의 그대 숨결이 아녔다면

내 귓가에서 맴도는 그대 입김이 아녔다면

오 사랑하는 사람이여

지금의 내 가슴은 얼마나 메말라 있으랴

지금의 내 영혼은 얼마나 황량해 있으랴



세계를 잃고 그대 하나를 내 얻었나니

그대 이름 하나로 우주와 바꿨나니

나는 만족하나니

지금은 다만 그대만이 그대 사랑만이

내 안에 가득한 행복이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