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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연필 닳는 소리

[2010.06.06] 엄마와 딸의 도시락


  부모님과 이야기 많이 하시나요? 취업준비로 바빠야하는 저는 취업준비 대신 휴학생의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평일 이른 오후에 엄마와 함께 목욕탕에 간다던가, 괜히 일하기 싫은 날 가게 문을 닫고 가시는 등산 길을 함께 한다던가 하는 특권들이죠^^ 그 중에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아졌다는 특권도 있습니다. 딸의 입장에서 부모님과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우리 엄마 아빠가 맞으신가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답니다. 특히, 엄마 아빠의 어릴 적 이야기가 그렇죠. 어릴 적의 엄마 아빠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달까요? 그러다 문득 또 생각하죠. 나는 아직도 엄마 아빠에 대해 모르는게 많구나... 엄마께 들은 엄마의 도시락 이야기 한번 해볼까합니다^^


 딸은 몰랐던 엄마의 이야기 - 차마 열지 못한 도시락
 

  언젠가 나른한 봄에, 엄마와 함께 커피 한잔을 마실 때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그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 처럼 엄마는 자연스레 어릴 적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엄마 어릴 적엔 그 시절 누구나 그랬듯이 먹고 살기 힘들었고 엄마도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어려운 살림에 일 하시는 외할머니를 도와 막내 동생을 업어 키워가며 집안 일을 해야했던 시절이였죠. 엄마는 첫째라는 이유만으로 군소리 없이 집 안 일을 했지만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그렇지만 여린 여자아이였습니다. 
  소풍 가는 날, 외할머니는 김밥을 싸주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평소와 같은 도시락을 싸주셨죠. 즐거운 소풍 날, 평소와 같은 도시락에 실망했을 엄마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한 번은 소풍에 김밥 한번 싸주지 않았던 외할머니가 야속해 엄마는 김밥을 싸달라고 졸랐답니다. 조르고 졸라 외할머니는 겨우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처음으로 외할머니가 김밥을 싸주셨던 그 날, 엄마는 점심도 굶은 채 도시락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도시락 안에는 소금 간 한 밥에 싼 김밥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저 김과 밥. 처음으로 김밥을 싸간 기쁨도 잠시, 엄마는 창피함에 도시락을 닫아 버렸습니다.
  처음 싸준 김밥에 대한 부푼 가슴은 한 순간에 창피함과 서러움, 야속함으로 변해 엄마 가슴 한켠에 아직도 눈시울을 붉히게 만드는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이야 남들 다 싸오는 흔해빠진 김밥이겠지만 어린 마음에 얼마나 속상했을지... 이야기를 해주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는 모르는 딸의 이야기 - 첫사랑 김치볶음밥

  엄마에겐 딱히 기회가 없어 안한 이야기인데 도시락에 대한 추억은 딸인 저도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자랑은 절.대. 아니고) 저를 좋아해준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친구입니다. 지금까지 그런 고마운 사람이 없으니까요. 흑흑ㅠ 솔로천국!! 
  학교에서도 티나게 가깝지도 않았고, 학교가 아니면 만날 일도 없었고 만나지도 않는 사이였는데 딱 한번 학교가 아닌 곳에서 만난적이 있었답니다. 바로 놀이공원. 사실 놀이공원이라기도 말하기 부끄러운 곳이지만 회전목마나 바이킹 등등 몇가지 놀이기구만 있답니다. 만나서 놀이기구 몇 개 타고 늦은 점심시간이 되니 밥을 먹자더군요. 그래서 저는 라면이나 사먹을 줄 알았더니 왠걸? 은박지로 된 네모난 도시락을 주네요. '뭔가..?' 하고 열어봤더니 그 안에는 김치볶음밥과 계란 후라이가 있었습니다.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며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자기 도시락도 열더군요. 자기가 먹을 도시락을 여니, 제건 정말 확연히 애쓴 도시락이였어요. 계란 후라이 하며 김치 볶음밥도^^ 만든지 오래되서 김치 볶음밥은 붉은 기름기가 넘쳤지만 둘이서 맛나게 잘 먹었답니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참 쉽게 만나고 그만큼 쉽게 헤어지지만, 그 때의 저는 그런 개념이 없었던데다가 경험도 없고, 아마 그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그렇게 애매한 사이로 딱히 사귀는 사이도 아닌 채로 졸업을 했답니다. 그리곤 지금까지 서로에 대한 연락 없이 각자 잘 살고 있...겠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가 신경써서 준비한.. 아마 첫 데이트(?)가 아니였을까 싶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귀여워요.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좋은 추억 남겨준 고마운 친구입니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 - 김밥 좀 싸주세요~ 네에~

  요새는 천냥짜리 김밥 집이 흥하면서 김밥이 흔해졌습니다. 하지만 천냥짜리 김밥 때문에 엄마가 싸주시는 김밥을 구경하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다행히도 제가 학생 때는 천냥짜리 김밥 집이 없어서 소풍 날이면 항상 김밥을 싸주셨습니다. 사실 김밥을 정성껏 싸려면 참 손이 많이갑니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서 김밥을 싸주셨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외할머니 덕분이 아닐지?!ㅋ 김밥을 싸시는 엄마 옆에 앉아 햄도 집어먹고 도시락에 대한 요구(?)도 하고^^ 아침에 김밥 먹고 가고, 점심 때 엄마가 싸준 김밥 먹고, 돌아오면 남은 김밥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때 그 김밥!! 그런데 천냥짜리 김밥 집이 많아진 요즘 학교를 다니는 동생을 보니 짠하다고 해야할지 어쩔지... 동생이 소풍가기 전날, 오랜만에 김밥을 먹을 생각에 들떠서 냉장고를 열었는데 김밥 재료가 하나도 없는겁니다. 김밥재료 어딨냐고 물어보니 김밥을 안 싼대요. 이유가 뭐냐고!!! 동생은 도시락 들고가기 귀찮답니다. 응?? 어차피 어딜가나 파는 김밥, 그냥 천원 주고 사먹겠답니다.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한다고. 자기들이 김밥 싸는 것도 아니면서-_- 이런 이유로 저도 김밥 얻어먹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엄마한테 김밥 좀 싸달라고 졸랐습니다.

나 : 엄마~ 김밥 좀 싸줘~
엄마 : 뭐하게? 귀찮아~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데~
나 : 아~ 좀 싸줘~ 먹고 싶잖아~
엄마 : 재료도 없어!! 정 먹고 싶으면 천원짜리 사먹어
나 : 그게 무슨 김밥이야? 단무지만 들었지-_-
엄마 : 그럼 네가 만들어 먹던가
나 : 엄마가 한게 먹고 싶어!! 내가 한건 맛 없어!!! 이런 치사한 엄마!! 뭐 있는거로 대충이라도 좀 만들어줘!!

그렇게 해서 엄마가 대충 만들어준 김밥도 왜이리 맛있는지!! 천냥짜리 김밥에 이런 추억을 뺐긴 동생이 왠지 짠~해집니다.


동상들아~ 천원짜리 김밥 말고 엄마표 김밥!! 그거 묵으라!!ㅋ
아~ 쫌!!
언니 오빠들도 니들 덕에 엄마 김밥 좀 묵자!!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