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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책장 넘어가는 소리

아오야마 나나에 - 혼자 있기 좋은 날

혼자 있기 좋은 날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아오야마 나나에 (이레,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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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서 펄펄 끓고 있는 물의 슬픔

(p25)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동요되지 않는 자신이고 싶은 것이다.

(p45)



어느 정도의 고생은 각오하고 있다. 나는 어엿한 인간으로 어엿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될 수 있는 한 피부를 두껍게 해서 무슨 일에도 견뎌낼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장래의 꿈이라든가 일생일대의 사랑 같은 건 아직 뭐 하나 그려지지 않았지만, 그런 바람 비슷한 것만은 어렴풋이 지니고 있었다.

(p61)



엄마가 내게 들인 돈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 막대한 돈은 대체 언제쯤 갚을 수 있을까?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걸 전부 갚지 않고서는 엄마에 대한 비판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에 대해서는 아직은 감사의 마음보다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p96)



딸로서 본 엄마는 그녀가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항상 뭔가 벗어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엄마가 바라보는 딸의 모습에서 그만큼 벗어나 있겠지.

(p98)



가능하면 이별은 조용히, 자연스런 형식으로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p119)



나는 마음속에 간절한 소망을 지니고 매일매일 끈기 있게 빌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p136)



제대로 된 생활 같은 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내게는 불가능할 것 같다. 손에 넣었다가는 내팽개치고, 내팽개쳐지고, 정작 내팽개치고 싶은 것들은 언제까지고 떨쳐버리지 못하고, 내 인생은 온통 그런 일들뿐이다.

(p148)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미덥지 못하다. 나는 누군가를 나와 튼튼히 연결해두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다. 혼자서 살아보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한 번은 자신이 먼저 떠나보고 싶다.

(p150)



“노인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젊을 때가 정말 좋은 땔까요? 매사에 끙끙 앓고, 비관적이고, 피곤해요. 그런 거, 이제 다 지겨워요.”

“젊을 때는 다들 무턱대고 손을 뻗으니까...... 나처럼 나이가 들면, 내밀 수 있는 손도 점점 줄어드는 법이야.”

(p151)



“젊었을 때는......”

현관의 벨이 울린다. 오늘도 호스케 씨가 오는 것이다. 이젠 굳이 현관까지 나가서 맞이하지 않아도 그가 알아서 들어온다.

 “고생을 배우는 거야.”

그 ‘고생’이라는 게 언제, 어떤 식으로 찾아오는 건지 나는 깅코 씨에게 묻고 싶었다. 그리고 혼자서 어떻게 그걸 맞아들이면 좋을지 가르쳐줬으면 싶었다.

(p174)



누군가 옳다 그르다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불안한 것이다. 산처럼 쌓인 바나나들 속에서 한 송이를 골라내는 일에도 나는 ‘이걸 고르길 잘한 걸까’하고 먹을 때까지도 끙끙 고민을 하겠지.

(p178)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예정된 이별은 예기치 못한 이별보다 어렵다.

(p181)



“할머니, 세상 밖은 험난하겠죠? 저 같은 건 금방 낙오되고 말겠죠?”

“세상엔 안도 없고 밖도 없어. 이 세상은 하나밖에 없어.”

(p183-4)



미래가 없어도 끝이 보여도 어쨌든 시작하는 건 자유다. 이제 곧 봄이니까 다소 무책임해지더라도 용서해주자.

(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