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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유 에세이인데다가 제목도 너무도 좋아서 고른 《천 개의 공감》은 정신분석학에 바탕을 두고 여러 종류의 상담에 대한 답변을 엮어 놓은 책인데,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학과 융 학파의 정신분석학을 바탕에 두고 각 사례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원인을 규명하여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저자가 관련 도서를 수백권의 읽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정신분석을 받은 경험도 있고, 그 후에도 꾸준히 의식적으로 자기 분석의 시간을 보내서 그런지 상담에 대한 답변이 굉장히 전문적인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는 프로이트 학파의 정신분석에 기초하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 프로이트 학파와 융 학파의 정신분석을 고루 인용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해서는 약간 공부한 적이 있고, 융 학파의 정신분석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지만 정신분석에 대해 잘 모른다하다 하더라도 읽기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 같다. 다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해 약간이라도 공감할 수 있어야 읽기에 더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매 상담의 끝에 인용된 문장들은 어느 하나 빼 놓을 수 없이 좋은 말들이였다.
다양한 사례의 상담 내용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성폭행을 당한 여성분에게 해주는 상담 내용만 발췌해보았다. 요즘 여성들에게, 특히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성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어 마음이 안 좋은데, 그런 분들의 몸과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려본다. 상담 내용 중에는 성폭행을 당한 여성분들께서는 우선, 자신의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가해자를 용서하고.. 이런 조금은 상투적이다 싶을 수 있는 내용 속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어린 아이의 경우에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성폭행을 당하신 분들께서 저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이다.
다음으로 그 일을 평범한 사고 정도로 인식하셔야 합니다. 성폭행 역시 길을 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지거나, 개에게 물려 상처가 난 것과 조금도 다름없는 사고일 뿐입니다. 가부장적 사회가 여성의 성에 부여한 억압적 의미를 벗어내고, 성 의식에서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마음의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자판기 님의 성은 누군가가 훼손하거나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 잘 보존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신이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신체의 일부분이며, 그 신체의 한 부위에 상처를 입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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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안다면 마음을 추스리는데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자판기 님, 지금까지 살면서 제가 만났던 여성들 가운데 많은 이가 성폭행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상에서 불필요하게 남성을 경계하는 여성부터 사회 적응에 심각한 기능 장애를 겪는 여성들까지, 그들은 대체로 내면에 성폭행의 경험을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유능하고 자신감 넘쳐 보이는 아름다운 여성들도 불쑥 " 저는 성폭행 피해자예요"라고 말을 건네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가벼운 추행까지 포함하면 거의 90퍼센트의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위로받으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사실을 안다면 고통 속에 주저앉아 있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지면서 무슨 행동이든 취하고 싶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2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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